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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아빠의 일상다반사

권위를 스스로 잃는 방법에 대해서

by 이니셜 에이 202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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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경기에서 심판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일관성 있게 하지 못하자, 심판들 스스로 권위를 잃기 시작했다. 권위를 획득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데, 왜냐하면 오랜 기간동안 만들어 온 권위라 하더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한두번의 실패로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한화 이글스의 이용규 선수가 일관성 없는 심판의 볼 판정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었다. 이용규는 지난 7일 SK 와이번스전을 마친 뒤 "선수들 대부분이 볼 판정의 일관성에 불만이 많다"며 "심판분들이 노력하는 것도 알지만 선수들 마음도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KBO는 다음날 해당 심판조 전원을 퓨처스리그로 내려보냈다. KBO가 판정 문제를 이유로 심판을 2군으로 강등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스로 권위가 무너졌음을 인정한 셈이다. 

 

만약에 스트라이크 존보다 약간 높은 공이 들어왔을 때, 매번 일관되게 같은 판정을 했다면, 한두 번은 고개를 갸웃거렸겠지만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같은 판정을 내린다면 결국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수긍했을 것이다. 선수들이 일관성에 대해서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심판의 권위에 대해서 이용규 선수처럼 이의를 달지 않았을 것이다.

 

권위를 지키는 것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왜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 권위를 잃는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아래와 같이 권위의 3가지 유형을 정의한 바 있다. 

 

  • 카리스마적 권위란 비(非)일상적인 사건을 실현할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을 발휘함으로써 발휘된다.
  • 전통적 권위란 오래 전부터 인정되어 있는 전통적인 의식에 따름으로써 지배자가 권위를 얻는 것을 말한다.
  • 합법적 권위란 법률의 범위 내에서 권위를 집행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권위라는 것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존재한다.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개개인의 욕망은 종종 충돌한다. 특히, 사회가 집단 공동체에서 개인화로 진보 해감에 따라, 개인 간의 욕망이 충돌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카리스마적 권위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권위라는 수단으로 욕망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지만, 반대로 권위가 무너지는 곳에서는 욕망이 무섭게 충돌하고 폭발한다. 욕망의 충돌을 잠재울 수 있는 수단의 하나가 바로 리더가 일관성을 지켜내는것이다. 개개인은 모두 모양과 색깔이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욕망의 특수성은, 일관성이라는 잣대 앞에서 평준화가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권위 있는 심판이 내리는 일관성 있는 볼 판정에 대해서는 타자도 투수도, 상대방을 무차별하게 이기고 싶다는 욕망을 이성으로 조절하면서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법의 권위에 기댈 수 있는 것도, 법률이 갖는 일관성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부패한 검찰에 대해서 시민들의 욕망이 폭발하는 것은, 법률을 일관성있게 적용하지 못한 검찰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반드시 욕망과 욕망이 맞부딪혀서 폭발하는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보단, 일관성을 담보한 권위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사회적 비용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관성을 버리는 것, 그것은 스스로 권위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 그러기에 말과 행동에 일관성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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