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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아빠의 일상다반사

관료주의는 팬이 거의 없다

by 이니셜 에이 2019.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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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주의는 팬이 거의 없다.

위계질서가 대표적이다. 조직 서열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통제, 관리하여 조직 전체의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 관료주의가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남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행동을 유발한다. 남에게 복종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관료주의는 관료 말고는 팬이 없다. 

관료주의는 사람을 중심에 둔 것이 아니라 조직의 효율적 운영과 성과를 중요시한다. 관료주의는 개인이 가진 창의성을 종종 말살하고, 상급자가 하급자를 착취하는 태도를 갖기 쉽고, 결국 사람들은 관료주의에 대해서 싫증을 느낀다. 왜냐하면 관료주의는 인간의 성취에 대한 세금이기 때문이다. 

관료주의와 공생을 할 것인가?

관료주의의 탄생

관료제의 어원은 bureau(사무실)와 -cracy(지배)로 사무실 책상물림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말이다. 막스 베버가 주장한 조직의 형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며, 베버 본인은 이 체계를 "가장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조직의 형태"라고 했다. 왜냐하면 관료주의 조직에서는 인간관계가 아닌 정해진 규칙과 질서, 특히 상하 위계질서에 의해서 업무가 처리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였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가 주장할 당시는 귀족 중심적 조직 운영의 비효율성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모하는 시점에서는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관료주의가 주장하는 효율성과 생산성보다 더 적합한 조직 체계는 없었을 것이다.

상-하간의 철저한 위계질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조직 내의 갈등 요소를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위에서 지시하는 일에 대해서 밑에서 다른 의견을 낼 수 없는 구조이다. 마치 군대에서 까라면 깐다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하 간의 갈등이 일어날 소지를 원천적으로 틀어막는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조직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조이다.  

 

작은 틀에 갇혀서 작아진 우리들

잘 나가던 관료주의는 왜 팬이 없어졌을까? 

인간을 정해진 작은 틀 안에 가두어 놓고 그 안에서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만 평가하고 보상을 한다면, 틀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선 무관심하게 된다. 나만 생존하면 된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나간다. 부서 이기주의가 생겨난다. 심지어 자기가 살기 위해서 조직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파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창의성을 제한하고, 정해진 매뉴얼과 프로세스에 의해서만 행동하게 하고, 이를 벗어날 경우에 질책을 한다면, 역시 작은 틀 안에 갇히게 된다. 이를 Red Tape라고 부른다. 규정된 절차를 글자 그대로 따를 것을 강요하는 시스템이다. 16세기 스페인 행정부에서 중요한 행정서류는 특별히 붉은 끈으로 묶어놓는 관습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한 순간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위계 조직은 소수의 수뇌부가 다수의 하부 조직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소수가 다수를 통제하게 되면 민주주의는 제한을 받게 된다. 특히 조직이 커지고 복잡도가 높아질수록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힘들어진다.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으면서도, 국내 기업들의 수뇌부가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이 비민주적인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 삼성전자의 백혈병 환자 발생 사건 등은 멈추지 않고 일어난다. 

미완의 인간과 관료주의의 공생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자신이 느끼기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는 것을 인생 성장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노력으로 채우지 않더라도 어떤 핑곗거리를 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관료주의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에게 핑곗거리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될 상황에 처할 것 같으면, 메뉴엘이나 프로세스에 기대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지 (눈이 빠져라) 찾아본다. 문서에 꼭 하도록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굳이 하지 않는다. 위에 건의해 봤자 바뀔 게 없다는 핑계가 있기에 부정한 일을 목격해도 그냥 모른 척한다. 남의 일에 간섭을 해봤자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핑계가 있다. "예산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인원이 없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선례가 없습니다."의 다섯 가지 핑계가 대표적이다. 결국 "저는 의지가 없습니다"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어쩌면 내일도 모레도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우리가 관료주의와 어차피 공생해야 하는 관계라면 갇힌 틀에서 한 발자국만 밖으로 벗어나서 틀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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